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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타가 있습니다.


4화 중반의 전투를 따지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마나토 사망이라는 결과가 나온 게 어찌 보면 당연할 정도지요. 지금부터 그 문제점을 하나하나 자세히 짚어 보겠습니다.


우선 4화 초반에 하루히로 파티는 고블린 3마리를 가볍게 처치하고 전투 현장에서 바로 휴식을 취합니다. 고블린 무리와 맞닥뜨렸다는 사실은 그곳에 최소한 중립 지역임을 의미하지요. 마을의 치안력이 닿지 않는 곳이라 이런 곳에 들어간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와야 합니다. 이렇게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곳에서는 전투 진형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형을 짜는 게 좋을까요?

전사인 모구조가 선두에 서는 게 바람직합니다. 일행 중에선 방어구가 가장 충실하니 투사 공격에도 적은 피해로 막을 수 있고 유사시 대응하려면 탱커가 앞에 있는 게 좋습니다.

후미에는 두 번째로 무장이 좋은 란타가 섭니다. 앞에서 공격이 들어오는 경우가 가장 많기는 하겠지만 똑똑한 상대라면 뒤를 찌르는 기습도 가능합니다. 같은 전사 계열인 란타가 후위를 맡는 게 바람직합니다.


신관, 도적, 사냥꾼, 마법사인 나머지 4명은 사실 필요에 따라 중간 어디든 서도 됩니다. 다만 전투 발생 시 누가 무엇부터 할 것인지는 미리 정해놓아야겠죠. 이 파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런 액션 플랜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파티장을 비롯한 파티원 모두가 초보자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은 있습니다.


4화 중간에 주인공 일행이 휴식을 마치고 전투 지대로 들어가는데 신관이 앞장섭니다. 아무런 방어구도 없고, 그렇다고 저격을 눈치챌만한 민첩성도 떨어지는 신관입니다. 이 시점에서 파티의 운명은 어느 정도 이미 결정이 났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주인공 일행이 고블린만 며칠 넘게 때려잡았다는 점을 상기해 봅시다. 고블린 입장에선 나름대로 활동 가능한 중립지대라고 생각했던 지역에서 차례로 동료가 죽어나가니 바싹 약이 올랐을 것입니다. 몇 명이 실종된 후 아마 실정을 파악하라고 정찰대를 내보냈겠죠. 전투 후 딱히 고블린을 다 땅에 묻고 흔적을 지웠다는 묘사가 없으니 동료 시체를 쉽게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되겠죠.


동료들은 대부분 자상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파티에 제대로 된 궁수가 없음이 명백해집니다. 복수를 위해 척살조를 파견하려는 고블린 입장에서 취해야 할 행동은 이제 자명하죠. 실력 좋은 궁수 몇 마리와 호위로 쓸 만한 탱, 딜 전사 몇 마리를 대동하면 됩니다. 이런 구성원으로 아마 며칠을 매복한 끝에 주인공 파티의 흔적을 잡았겠죠. 첫 화살이 치명상이 아니라 부상에 그친 것도 짐작컨대 의도적이었을 겁니다. 선두에 선 신관도 사실 바로 죽일 마음은 없었겠죠. 힐이 가능한 신관이 앞에 있는 걸 보고 아마 고블린 저격병은 쾌재를 불렀을 겁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등장한 저격 장면인데 일부러 한 방에 치명상을 입히지 않습니다. 부상만 입힘으로써 동료로 하여금 섣불리 후퇴할 수 없게 만들고 부상병을 구하러 위험을 무릅쓰면 추가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블린 저격병의 이 의도는 적중합니다. 비록 신관을 노리지는 못 했지만 일단 부상을 입힘으로써 신관의 발도 묶였으며 파티는 잠시나마 도망을 지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투사 공격이 불가능하다시피 한 파티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는 거였죠.

어쨌든 부상을 입은 하루히로를 모구조는 엄폐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시켜 힐을 받게 합니다. 여기까지는 정답이었죠. 힐이란 게 단숨에 상처를 치료하는 효과를 지녔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만 벌어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모구조는 이 바로 다음 장면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합니다. 파티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갑주를 갖춘 자신이 후위에 서지 않은 것이죠. 적에게 투사 무기가 있다는 사실과, 꽤 정확한 명중률을 지녔다는 점이 하루히로 저격으로 증명된 이상 여기선 모구조가 무조건 후위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며 여차하면 자신이 화살을 몸으로 막을 기세로 후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구조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죠.

무서운지 엄폐물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뻔히 노출된 마나토가 등에 화살을 맞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고블린 저격병 입장에서 딱히 노릴 적이 얘 혼자잖아요?


결국 마나토의 사망은 본인의 지휘 미숙, 유메의 사격 실력 부족, 모구조의 상황판단 능력 부족이 합쳐져 일어난 비극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나 마나토 사망 후 누구도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죠. 다들 몰랐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군대도 안 갔다 온 미성년자 집단인데다 파티의 경험 부족, 준비 부족이 1차 원인이고, 고블린 척살조의 철저한 분석과 준비가 맞물려 이런 참사가 벌어진 겁니다. Q.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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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1 - 재와 환상의 그림갈(灰と幻想のグリムガル,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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