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민주주의체제 중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방식은 대의민주주의[각주:1]이다. 대의민주주의라고 함은 대의代議라는 한자어에서도 유추할 수 있는데 정치함에 있어서 모든 사안마다 다수의 의견을 일일이 규합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신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대표자가 다수의 뜻을 받들어 정치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대의제는 몇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대리인문제이다. 위임자라고 할 수 있는 국민과 수임자인 정치가 사이에는 이익의 충돌[각주:2]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데 이 충돌이 일어날 때 실질적인 권력을 쥔 정치가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 선택이란 결국 정치가 개개인의 양심에 맡길 수 밖에 없는데[각주:3] 불행이도 인간의 짧은 역사 속에서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충돌한 때 전자를 더 중히 여긴 사례가 많은 바, 이를 방지할만한 적절한 견제장치가 존재하지 않으면 국민의 뜻을 정치에 간접적으로나마 반영한다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의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로 가는 길의 교두보일지도 모른다. 역사를 돌이켜 본다면 역사는 대체적으로 권력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과정에서의 피의 투쟁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정치라는 것은 결국 각각의 이익집단들의 세력다툼 정도로 볼 수가 있을터인데 고대에는 여기서 이기면 정적을 세상에서 완전히 제거하거나 그에 준하는 형벌을 가하는게 가능했고 또 정당화[각주:4]되었다. 여러 집단 중 하나에 권력이 집중될 수 있었던 까닭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은하영웅전설에서 비교적 역사가 오래된 체제인 은하제국에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권력을 잡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의 성공은 정적들의 피 위에 쌓아올려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민주주의 체제 하에 있던 양 웬리의 경우는 권력을 잡는 과정은 훨씬 점진적이고 평화적이며 어찌보면 수동적이기까지 하다.[각주:5] 이는 전제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물론 자유행성동맹의 붕괴 후의 양의 행보는 민주주의라는 이상향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한 개인에 대해 법에 의거하지 아니하고 무한의 폭력을 감행했을 때[각주:6] [각주:7] 그 개인이 택할 수 있는 수단이 극히 제한된다는 점에서 미루어볼 때 양 웬리의 개인적 행동에 대해서는 정상참작될 여지가 많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나라의 헌법에서도 국민의 국가에 대한 저항권이 명목적으로나마 인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정치적 숙청은 현대사회로 들어서면서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이는 패한 집단이 절치부심 끝에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선결됨으로서 비로소 현대의 양당제/다당제가 들어설 수 있는 기반이 닦여졌고 민주주의가 꽃 필 수 있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체제의 가장 큰 장점은 권력을 가진 집단이 언제든지 선거로 바뀔 수 있다는 것에 있고 이는 권력의 견제가 용이하다는 것을 뜻한다. 전제정치 하에서는 군주가 실정을 한다고 해서 바로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군주와 비등한 정도의 권력을 가진 존재가 없을뿐더러 처음부터 허용되지도 않는다. 모든 권력은 옥좌에 앉아있는 한 명에게 모두 집중되며 그 나라의 운명 또한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은하영웅전설의 역사를 되돌아보자. 골뎀바움 왕조 말기에는 실정이 몇세대나 지속되었지만 그 왕조를 끝낸 것은 라인하르트에 의한 양의를 빙자한 군사쿠데타였다. 돌려말하면 군사쿠데타라는 다소 극단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황제를 옥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다는 뜻이다. 라인하르트가 군사와 정치를 아우르는 보기드문 인재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골뎀바움 왕조가 거기에서 끝난 것은 순전히 제국신민들의 운이 좋았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이에 반해 동맹에서 같은 정도의 실정을 반복하였다면 그 정권은 몇 대를 이어가기는 커녕 바로 다음 선거도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각주:8]

전제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는 권력의 집중화 정도로도 설명할 수 있다. 전제주의, 곧 절대왕정 하에서는 모든 입법, 사법, 행정의 최종결정권자는 황제로 말하자면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의장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강대한 권력인 것이다. 권력을 나누는 것은 그것이 집중되었을 때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권력이란 집중될수록 다른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시너지 효과가 나는 동시에 부작용도 커진다. 욥 트류니히트도 처음 국방위원장의 위치에 있었을 때는 아직 절대권력을 잡기 전이라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각주:9] 암릿처 성계 회전 이후에 전면으로 나서면서 권력이 그에게 집중됨에 따라 동맹은 점점 파멸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민주주의도 완벽한 체제라고는 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통치의 평균치를 올리자는 노력이지 절대치를 올리자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왕정에서는 권력집중화로부터 오는 부작용도 큰 동시에 순작용도 있다. 바로 군주 한명의 현명함으로 치세가 어느정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권력이 나뉘어져 있는 민주주의체제에서는 발휘되기 힘든 미덕이다.[각주:10] [각주:11] [각주:12] 개인이 뛰어나도 그를 견제하는 기구도 발달되어 있는만큼 좋은 일에도 견제가 들어오기 마련인 것이다. 대기업을 예를 들어보면 민주주의는 말하자면 전문경영인을 가진 주식회사이다. (대)주주들의 눈치를 보아야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만큼 실정을 반복적으로 저지르고도 자리를 지키는 경우는 줄어들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단기이익만을 좆아 손해를 감수하고 진행해야 하는 장기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부정적이 되기 마련이다. 암릿처 성계 회전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양웬리의 지략에 힘입어 이제론 요새를 점령한 후 동맹최고위원회는 병력을 추스리고 손실을 벌충하는 등의 내정에 충실했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의 지지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제국에의 공격을 결의한다. 언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단기적인 도박을 감행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도박장에서 너무 돈을 많이 잃은 나머지 판단력을 상실한 도박꾼의 심리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정치란 결국 다수의 인민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제아무리 강대한 권력자가 압제를 펼친다 하더라도 그 권력이나 부가 몇 대를 가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고 결국은 꽉찬 냄비를 끊이면 폭발하듯 폭발하는 인민의 분노를 막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부의 혁명에 의해 정치체제가 바뀌지 않는다면 의욕상실에 따른 무능력과 비효율이 판치는 사회가 되어 결국은 외부의 침입에 의해 쉽게 무너지게 된다. 지금까지 모든 국가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멸망하였다.

  1. 물론 스위스와 같이 직접민주주의가 폭넓게 이루어지는 사례도 있으나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와 각 지역이 분리되어 서로 간섭하지 않고 지내왔던 역사적인 배경의 영향이 크고 중앙집권을 이루어낸 많은 국가들은 거의 모두가 대의제를 택하고 있다. [본문으로]
  2. 예를 들어 개발예정도시계획을 미리 안 정치가나 공무원들이 사익을 위해 이러한 정보를 이용해 땅을 선점하면 비싼 보상비용을 통해 그 땅을 구매할 수 밖에 없으므로 공익에 해를 끼친다. [본문으로]
  3. 이미 선출되어 있는한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러 탄핵되지만 않는다면 임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고위공무원으로 갈수록 부재시의 국정혼란을 막기 위해 탄핵이 매우 어렵도록 되어있다. 정치적인 논의는 접어둔채 몇 년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동을 생각해보자. 탄핵안에 국회에서 통과하고 거의 효력발휘까지 가는 듯 하였으나 결국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에 무너지고 말았다.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 물러나야 한다고 할지라도 되도록이면 사임이라는 비교적 온건한 방법을 택한다. 4.19 혁명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날 때도 국회에 의해 탄핵되지 않고 하야하였다. [본문으로]
  4. 조선시대에도 당파싸움에서 한 쪽의 승리가 확실해지면 피바람이 불고는 했다. 노론과 소론의 반목을 생각해보자. [본문으로]
  5. 물론 양 웬리 본인이 라인하르트와는 다른 권력지향적인 인물이 아니었던 까닭도 있다고 본다. [본문으로]
  6. 양 웬리를 희생양 삼아 체제의 안정을 꿰하고자 했던 일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따른 행동이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본문으로]
  7. 또는 법 자체가 공정성을 현저히 잃었을 경우에 [본문으로]
  8. 선거는 포퓰리즘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어찌됐든 기본적인 국민의 생활수준을 유지해야 재신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의 신임을 전혀 묻지 않는 왕정과는 비교조차 불가하다. [본문으로]
  9. 암릿처 성계(?) 회전 때 반전 쪽에 표를 던지는 등 [본문으로]
  10. 로마제국도 영토가 방대해짐에 따라 결국 제정으로 전환했음을 봐도 그러하다. [본문으로]
  11. 과거에서 몇 안되는 귀족정(베네치아)나 민주정(고대 그리스)을 보아도 도시국가의 규모였지 대제국을 이룬 예를 극히 드물었다. [본문으로]
  12. 물론 베네치아가 도시국가에서 머물렀냐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크레타를 비롯한 여러 크고 작은 섬과 이스트리아 반도, 이탈리아 반도 쪽의 육지영토까지 다스리던 베네치아는 결코 소국었다고는 할 수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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