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리얼 판타지로의 초대


제작 : A-1 Pictures

감독 : 나카무라 료스케

장르 : 판타지, 차원이동물

방영 : 2016년 1월

진행 : 8화/12화 예정


※ 네타가 있습니다.


현대 일본의 10대 소년·소녀 수십 명이 영문도 모른 채 빨간 달이 뜨는 그림갈의 세계로 이동해 온다. 어리둥절한 그들 앞에 갑옷을 입은 의용병단 단원들이 나타나 수습생이 되기를 권유한다. 달리 선택지가 없는 그들은 권유를 받아들이고 각자 파티를 꾸며 흩어진다. 여기서도 개개인의 능력은 평등하지 않아 뛰어난 자들끼리, 떨어지는 자들끼리 따로따로 모인다. 주인공 하루히코에겐 딱히 특별한 재주가 없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인가 열등생 그룹에 속해있다.


기억이 날아갔다고는 하나 현대에서 곱게 자란 주인공 일행에게 피와 살점이 튀는 의용병으로서의 하루하루는 녹록지 않다. 그림갈에서 가장 시시하다는 고블린 사냥도 이들에게는 전력을 다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큰일이다. 그렇다고 안전한 아르바이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애당초 못이 박힌 까닭에 꼼짝없이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 고블린을 잡는다. 가장 하위 몬스터지만 체스를 둘만큼 지능도 높고 동료의식이 뛰어나며 무엇보다 칼로 찌르면 인간과 똑같이 시뻘건 피가 솟구친다.


이렇게 힘든 하루하루를 견뎌도 손에 떨어지는 건 겨우 그날그날 입에 풀칠을 할 수준. 장비도 길드에서 가입할 때 주는 기본 방어구, 무기뿐이라 매 전투마다 줄타기하는 것처럼 위태위태하다. 그나마 파티장이자 신관인 마나토가 개중 남다른 실력으로 전투에서 전·후방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공격과 방어, 치유까지 3인분을 도맡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겨우 견습생인 탓에 숙련이 필요한 마법사나 궁수는 거의 도움이 안 될 지경이라 전방에서 싸우는 전사들에게 부담이 몰리는 상황은 불가피하다.


이런 도박도 하루 이틀뿐, 결국 마나토는 고블린 저격수에 의해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파티는 그때까지의 허술한 임시방편과 소꿉장난하는 마음가짐으로는 약육강식의 세계인 그림갈에서 살아가기에 부족함을 비로소 자각한다. 한편 막막한 미래를 마주하면서도 피 끓는 청춘 남녀들 사이에서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고된 하루하루를 겪으며 그들은 성장해 가는데…….


수채화로 그린 동화풍 작화가 다채롭다. 마치 어린아이 그림책 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인데 처절한 전투 장면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신기하게 어울린다. 음악 또한 요소요소마다 적절히 들어가 있어 전투할 땐 긴박하고, 쉴 때는 느긋하며 마나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는 가수 NIKIIE가 한없이 슬픈 가락을 뽑아낸다. 여러모로 제작사 측에서도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게 눈과 귀로 느껴진다.


이번 분기에 방영 중인 「이 멋진 세계의 축복을!」(이하 코노스바)과 같은 장르인 판타지 더하기 차원이동물이라 어찌 됐든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개그물인 코노스바와 일종의 리얼 판타지계라 분류할 수 있는 본작은 재미 포인트가 다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보기 좋은, 그러나 태클을 걸자면 의외로 태클 걸 구석이 적고 살짝 비틀린 클리셰가 유쾌한 게 코노스바라면 실제로 판타지 세계에 떨어진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현실적 세계관을 잘 그려낸 게 「재와 환상의 그림갈」(이하 그림갈)이다.


다만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도 몇 군데 존재한다. 우선 분량 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12화 중 8화가 방영되었는데 스토리 진행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주인공 일행이 그림갈에 떨어지고 고블린과 싸우다 마나토가 사망해 메리로 대체된 것이 전부다. 물론 파티가 좌충우돌하며 마나토의 죽음으로 침체된 분위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극복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감동스럽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면 8화 내내 이야기의 구성이 다소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작을 따라가는 전개겠지만 이대로 가다간 12화에 이르도록 기승전결의 승이나 갈까 하는 걱정이 든다.


마나토가 너무 이른 단계에서 사망한 것도 좀 불만이다. 이를테면 「인터스텔라」에서 도일 박사가 죽을 때 느껴지던 허무함이 여기서도 반복된다. 동료의 죽음이 예상될 정도로 스토리가 고조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건이 벌어져 파티의 각성을 촉발하고 진지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끌어내기 위한 작위적 장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다. 물론 갑작스런 죽음이라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좋은 작품임은 틀림없다. 『소드 아트 온라인』에서 키리토의 먼치킨성과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에서 벨 크라넬의 편의주의적인 성장력에 지루함을 느꼈다면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그림갈의 매력에 한번 빠져보는 게 어떨까.



관련글

2016/02/26 - [재와 환상의 그림갈] 불가피한 비극 - 진형의 문제

2016/02/22 -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 201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